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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rt letter

[전정국 민윤기 빙의글] Life walks towards me


들려오는 바람 소리와 자동차의 쉴 새 없는 움직임이 자꾸만 정국의 몸을 때렸다. 시선을 먼 아래로 내리면 보이는 건 온통 거먼 물. 저곳에 삼켜질 거라는 생각은 수천 번을 반복해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언젠가 해 본 경험에 의해 생긴 트라우마라도 되는 듯, 생각할 때마다 결국엔 몸서리를 치고 만다. 분명 그토록 갈망하던 일인데. 막상 마주하니 어떻게 하고 싶은 것인지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외면하고 싶은 건지, 직면하고 싶은 건지.

"안 뛰어요?"

누군가 물었다. 소음을 뚫고 들려온 목소리는 바로 옆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했다. 돌아보면 마치 처음부터 그곳에 있던 듯 여유 있게 벽에 몸을 기대고 서 있는 한 남자. 어두운 공간에서도 한 눈에 보일 만큼 하얀.

"아까부터 그러고 있길래."

지금의 저를 초라하게 만들기 충분한 말이었다. 삶의 끝에 서 있는 이 순간, 어차피 자존심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었지만, 삼십 분 전에 저 말을 들었더라면 곧장 곤두박질치지 않았을까 싶을 만큼. 낯선 경계심에 마음이 한층 더 예민한 상태였지만, 제게 말을 건 이 순간이 왠지 꼭 예견되어 있었다는 느낌이 스쳤다. 그만큼 위로가 되는 목소리였다. 심히 부질없게도.
정국이 멍해지는 마음을 걷어버리려 고개를 흔들었다. 예상과 다르게 지켜보는 사람이 생겨버렸다. 마음만 먹으면 제가 취할 행동을 모두 눈으로 담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가만히 응시하다 허공으로 눈을 돌리니 이어 말한다. 지체되면 더 힘든데.

"마지막으로 나누는 대화인데, 더 긍정적인 말을 해주지 그래요."
"긍정적인 말. 그게 소용 있을까요."
"그럼 자극도 하지 마요."
"자극하려는 마음도 없어요."
"그럼 왜!"
"...."
"왜, 왜. 왜 그렇게 말하는데요."

정국은 끓어오른 마음을 삽시간에 억눌렀다. 감정을 눌러버리는 건 제가 습관처럼 해오던 일이라, 저도 모르는 사이 숨 쉬듯 할 수 있었다. 극적으로 달라지는 감정 변화를 보고도 남자는 이렇다 할 반응이 없었다.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그저 고요하게.

"다 끝날까요? 뛰면."

다 끝나겠지. 지금 느끼는 이 감정도 모조리. 정국은 기계처럼 속으로 답했다. 늘 생각했던 말이었으니까. 뛰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그럼. 지금 뛴다고 확실히 죽을 수 있을까요."

정국의 눈빛이 흔들렸다. 다른 경우의 수는 생각한 적 없었다. 앞에 놓인 모든 것들을 끊어내고 싶어서 지금 여기 있는 건데, 저 속으로 빨려 들어가도 죽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끊어지지 않고 계속된다면.

"식물인간이에요. 죽으려고 했던 누군가는. 죽는다는 결정은 할 수 있어도, 정말 죽음에 도달하는가는 본인이 결정할 수 없어요. 지금보다 더 괴로운 삶을 유지하며 살아갈 확률도 있어요."
"지금 설득하는 겁니까?"
"있는 그대로를 알려주는 겁니다."

저도 모르게 차오른 눈물에, 정국은 남자에게서 얼른 시선을 거두었다.

"겁 때문에 관두지 않을 거라는 거 알아요. 당신은 마음먹은 일은 해내고 말 테니까."

나에 대해 뭘 안다고. 정국의 중얼거림에 답하지 않은 남자는 마치 생각할 시간을 주듯 같은 자세로 서 있었다. 지금보다 더 지독해질지도 모를 현실을 과연 제가 받아들일 수 있을까.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지금을 벗어나기 위해 내린 결정으로 인해 더 괴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면. 하지만 이대로 빛 하나 없는 삶을 살아가는 것 또한 매한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눈을 감아도, 떠도 어차피 똑같은 삶이라면. 그렇다면 나는. 사고 회로가 더는 굴러가지 않고 굳는 것 같았다.

"사는 의미가 없어."

정국은 자신이 어디를 보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어느새 볼을 덮어버린 눈물. 조용히 다가온 남자가 속삭였다.

"그럼 뛰면 돼."

물결이 크게 일렁였다.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는 구석진 곳까지 빠짐없이 출렁이며 나아가다 막힌 곳을 만나면 힘을 잃고 흩어지기를 반복했다. 계속해서 격하게 차오르다 어딘가에 툭. 정국의 눈물이 저 깊은 강 어딘가를 뚫고 들어간다. 다시 몇 방울 투둑. 주변이 온통 짙은 물 뿐이어도 끝내 섞이지 않는 그것은 곧 있을 정국의 모습 같았다.
정국은 어떻게 하고 싶은 걸까. 그것들을 직면하고 싶은 걸까, 외면하고 싶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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