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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rt letter

[전정국 빙의글] 곧게 삐뚤어진 사이

입을 동그랗게 말고 기분 나쁜 연기를 연신 뿜어낸다. 삽시간에 정국의 얼굴을 덮친 연기는 서서히 떠오르다 이내 처음부터 없었던 듯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눈 하나 깜짝 않고 정국을 주시하다 이내 말한다.

 

“넌 내가 왜 좋니.”

 

꼰 다리가 네모난 테이블 영역 밖으로 벗어나 있었다. 몸을 곧게 세우고 앉아 있는 정국과 달리 한껏 비뚤어진 그녀의 자세는, 둘의 미래를 말해주는 작은 복선 같이 느껴졌다. 함께 있는 이 짧은 순간에도 결코 섞일 수 없다는 듯한. 정국을 서서히 찌르고 죽이는 그런 아주 작고 사소한 것들. 정국은 그것들을 버텨내고 있었다. 아무 말없이.

그녀는 정국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그의 눈은 늘 많은 말을 했으니까. 그녀는 그런 그의 마음을 단박에 읽어낼 수 있을 만큼 정국이 익숙한 듯했다.

이미 죽은 꽁초들로 가득한 컵에 가져댄 담배를 긴 손가락으로 톡톡 치면, 아슬하게 붙어 있던 재가 힘을 잃고 우수수 떨어졌다. 그럼 다시 담배를 입에 가져가고.

 

“담배 그만 펴요.”

 

몇 번이나 반복되는 그 모습을 눈으로 좇다 말하는 정국이었다. 고요한 말과 달리 요동치는 마음. 그런 그의 마음과 달리 그녀의 얼굴에는 실소가 번졌다.

 

“걱정되나 봐.”

“네.”

 

망설임 없는 대답에 조금 더 커진 웃음. 영혼 없는 웃음 같았다. 뭔가를 감추려고 과도하게 웃는 게 아닐까 싶었다.

언제부터 보이는 모습 외의 다른 뜻이 분명히 있을 거라고 믿게 된 걸까. 정국은 착잡해지는 마음을 애써 감추며 그녀를 주시했다.

의미 없는 웃음이 걸린 입에 다시 물린 담배. 정국은 일순간 눈을 질끈 감고 싶었다. 그녀의 담배처럼 자신도 언젠간 까맣게 타들어가 재가 되어버릴 것만 같은 느낌. 자신의 삶이 그녀의 삶 안에서 곧 저 담뱃재처럼 털리고 사라져 버릴 것만 같은 마음.

 

 

“거기도 가지 마요. 그런 데서 일할만큼..”

“입 닫아.”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고 뱉은 말에 돌아오는 대답은 차가웠다. 표정을 급속도로 굳히며 저를 똑바로 응시하는 그 눈은 원망 같은 것이 서려 있었는데, 그 원망이 오롯이 자신을 향한다는 느낌에 마음이 칼로 베이는 것 같았다.

 

 

“너랑 더 이상 볼일 없어.”

 

 

담배를 거칠게 비벼 끈 그녀가 금세 자리를 벗어났다. 이전에 몇 번이나 그랬던 것처럼 정국은 또다시 혼자가 되었다. 내내 차분함을 유지하던 표정이 금세 무너지고, 얼굴을 감싸 쥐는 두 손. 차마 뱉지 못했던 한숨이 입 밖으로 새어 나온다.

어떻게 해야 되돌릴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힘들어하는 순간마다 옆에 있어주면 될 거라고 굳게 믿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믿음조차 흐려져 기댈 곳이 사라지는 것만 같았다. 이젠 자신에 대한 그녀의 마음도 확신할 수 없었다.

 

‘사랑하지 않아.’

 

지겹도록 들어도 흔들리지 않던 마음이었는데.

정국이 테이블에 얼굴을 묻었다.

 

 

 

급한 걸음으로 카페를 벗어난 여자가 얕은 숨을 몰아쉬었다. 담배를 너무 많이 태운 것 같았다. 원치 않는 술을 많이 마셨던 탓인가. 이대로 호흡이 가빠지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숨이 멎어버릴 것 같았다. 차라리 그게 낫지 않을까, 이렇게 사느니. 어쩌면 그것이 그녀가 진심으로 바라고 있는 일일지도 몰랐다. 하루빨리 사라져 버리는 것. 그럼 모두가 편할 텐데. 지금의 정국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미래의 그는 편해지지 않을까. 힘들어도 견뎌낼 수 있을 테니까. 내가 없어도. 

어서 정리해 감춰버리려는 마음과 달리 목에 무언가가 자꾸 걸렸다. 점점 조여 오는 느낌에 벽을 잡고 연신 기침을 해댔다. 과도하게 마셨던 담배 연기까지 모두 토하도록 기침을 해봐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목이 계속 아팠다.

정해진 일정처럼 숨 막히는 고통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꼭 한 번씩 찾아오는 그 고통은 늘 그녀를 보이지 않는 곳 끝까지 끌고 가 괴롭혔다. 밤낮 가리지 않고 조여왔지만, 딱 숨통이 끊어지지 않을 그만큼만. 계속해서 목 언저리를 머물며 괴롭게 했다. 소리 없는 발버둥을 계속 쳐봐도, 그 고통은 피폐해진 그녀의 정신을 끝내 놓아주지는 않을 것 같았다.

카페에 혼자 남겨진 정국을 생각했다. 몇 번이고 제가 버리고 떠나온 사람. 항상 꼿꼿하게 앉아 맞은편에서 저를 지켜보던.

 

“사랑하고 있어.”

 

끝내 하지 않던 말을 혼자 중얼거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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