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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rt letter

[전정국 빙의글] Own it


"안 해요."

시끄럽게 울리는 음악 소리를 뚫고 들려오는 단호한 목소리. 정국은 뱉어진 단 두 글자와 내비치는 표정으로 이 사람을 완벽하게 파악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상황이 아니어도 제 스스로 타인을 판단하고 드는 데는 도가 튼 상태라 여기며 살고 있었고, 지금은 한층 강한 확신이 마음을 들뜨게 만들고 있었다.
여자는 지금 보이는 저 모습이 실제 모습일 확률이 다분했다. 겉으로 내비치는 행동이 현재 자신의 마음 상태와 일치할 확률 또한 높았고. 눈 하나 깜짝 않고 그 모습을 그대로 주시하는데, 여자 또한 지지 않고 눈을 맞추고 나선다. 현재는 서로를 가소롭게 생각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정국은 이런 식의 단호한 모습에 당황을 타거나 할 성격이 아닌지라 한 발 더 몸을 밀착하고 나섰다. 둘 사이에 얼추 맞는 듯 보였던 눈높이가 더욱 벌어지고, 여자는 고개를 조금 더 숙여 저를 응시하는 정국의 눈길을 피할 길이 없다고 느꼈다. 하려는 말이 꼭 '어디 이것도 싫다고 해 봐'인 것 같아서.
저의 의사를 확실히 전달했음에도 굴하지 않는 모습에, 기가 차면서도 약간의 호기심이 생기는 느낌이었다. 지지 않으려고 다분히 애쓰는 상황인데도 묘하게 서로를 갈구하는 것 같은 모양새가 된 이 상황은, 서로에게 흥밋거리가 되기 충분했다. 은은한 광택감이 풍기는 검은 셔츠를 입은 몸은 꽤나 단단해 보였다. 말아 올린 손목의 디테일에서는 고급스러움이 풍겨져 나왔고, 풀린 두 개의 단추를 차례로 쫓아 시선을 올리니 뻣뻣한 듯 유연하게 목을 감싸고 있는 셔츠의 깃이 눈에 들어온다. 허리에 둘러진 검정 벨트는 꼭 맞춰 다부지게 채워져 있었고, 그 아래로 쭉 뻗은 슬랙스는 긴 다리를 한층 더 길어 보이게 만드는 것 같았다. 선호하는 스타일에 완벽하게 걸맞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정국의 모습은 여자의 시선을 끌기 충분했고 무엇보다 이 상황을 함부로 쳐낼 수 없게 만드는 건 그의 내음이었다.
시끄러움과 대조되는 사이의 정적을 먼저 끊어낸 사람은 시선을 옮긴 정국이었다. 한 번 물기 시작한 건 어떻게 해서든 갖고 마는 성격인지라 포기하겠다는 의미로 맞추던 눈을 피한 게 아니라, 단지 가까웠던 몸을 더욱 가깝게 만든 탓에 눈을 마주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뿐이었다.

"할 수 없네요."

어깨춤에 닿은 얼굴에 고개를 숙이고 작게 속삭인다. 말이 끝났음에도 귀에 닿을 듯 말 듯하게 맴돌고 있는 그의 입에선 뜨거운 숨이 새어 나왔고, 쿵쾅거리는 비트가 끊임없이 심장을 울리는 이 상황에서 조용하게 주변을 맴도는 그것은 뼛속까지 짜릿하게 파고들 만큼 자극적이었다.
내내 기회만 살피며 정국의 주변을 살피던 여자들도 함부로 다가갈 수 없었다. 금방이라도 서로의 허리춤과 목을 감싸며 입을 맞춰도 이상할 게 없을 만큼 섹슈얼한 분위기가 흐르는 탓에 기회만 노리며 리듬을 타던 몸의 흐름이 하나둘 깨질 뿐이었다.
정국이 가까이 다가올수록 수만 개의 세포가 깨어나는 것만 같았다. 은은하게 코를 찌르는 향이 자신의 주변까지 감싸고돌아 얇은 막이 펼쳐진 듯했고, 그것은 정국이 아닌 어느 누구도 걷어낼 수 없을 것 같았다.
아까와 달리 아무런 대꾸도 없는 모습에 정국이 작게 미소 지었다. 그것은 본인이 주무르는 대로 흘러가는 상황에 짓는 가벼운 것이었지만, 겉보기에는 속을 알 수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주변이 사람으로 둘러싸여 그들이 움직이는 대로 둘의 몸이 같이 흔들렸고 그 탓에 살짝씩 스치는 두 손은 서로의 텐션을 끌어올리기 충분했다. 꼭 누가 먼저 손을 잡아야만 할 것 같은 느낌에 여자의 마음이 순간적인 망설임으로 가득 차오른다. 동시에 흔들리는 동공. 심박이 조금 전보다 빠르게 치고 올라가기 직전, 그 손 사이사이를 정국이 부드럽게 파고든다.
단단하고 차분한 손에 잡힌 이 느낌이 여자는 더 이상 싫지 않았다. 그 손길은 제 손이 아닌 얼굴과 목, 허리와 다리를 그대로 맡기고 싶은 느낌이 들게 만들었고, 이성적이었던 여자를 충동적이게 만들고 있었다.
여자는 의지와 다르게 자꾸만 끌려가는 제 모습이 의아하면서도 싫지 않았고, 더는 솔직하게 본인의 마음을 내비칠 수 없었다. 금방 새 바뀐 본인의 마음이 당황스러웠지만, 망설이는 사이 틈 없이 빼곡하게 차 있는 이 느낌이 금방이라도 허전해질 것만 같았다. 쉽게 떨쳐낼 수 없을 만큼 묵직한 마음이 여자를 누르고 있었지만, 그와 달리 정국은 깃털과 같아서 금세 사라져버릴 것 같았다.
몇 초 간 많은 생각이 여자의 머릿속을 떠다녔고, 애초에 길게 시간을 끌 생각이 없던 정국이 잡고 있던 손을 천천히 놓기 시작한다. 한 손가락씩 풀려 느슨해지는 것과 달리 여전히 바짝 밀착해 있는 손. 그 찰나의 순간을 놓칠 리 없는 정국이 다시 여자의 손을 바짝 잡고, 이전보다 더 가깝게 목에 얼굴을 묻으며 말한다.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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