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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국 빙의글] 곧게 삐뚤어진 사이 입을 동그랗게 말고 기분 나쁜 연기를 연신 뿜어낸다. 삽시간에 정국의 얼굴을 덮친 연기는 서서히 떠오르다 이내 처음부터 없었던 듯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눈 하나 깜짝 않고 정국을 주시하다 이내 말한다. “넌 내가 왜 좋니.” 꼰 다리가 네모난 테이블 영역 밖으로 벗어나 있었다. 몸을 곧게 세우고 앉아 있는 정국과 달리 한껏 비뚤어진 그녀의 자세는, 둘의 미래를 말해주는 작은 복선 같이 느껴졌다. 함께 있는 이 짧은 순간에도 결코 섞일 수 없다는 듯한. 정국을 서서히 찌르고 죽이는 그런 아주 작고 사소한 것들. 정국은 그것들을 버텨내고 있었다. 아무 말없이.그녀는 정국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그의 눈은 늘 많은 말을 했으니까. 그녀는 그런 그의 마음을 단박에 읽어낼.. 더보기
[김태형 빙의글] 팬지 (pansy) 맨발바닥이 바닥에 붙었다 떨어지며 쩍쩍 갈라지는 소리를 냈다. 여름 장마철이었다. 습기와 끕끕함을 가득 머금은 방 안에 초조하고 축축한 걸음이 쉴 새 없이 움직였다. 미처 다 마르지 않은 머리를 거칠게 뒤로 넘기면, 오른쪽 어깨에 아슬하게 걸쳐 있던 실크 가운이 아래로 흘러내린다. 흘러내린 가운을 따라 옮기는 시선에 담기는 붉은 선과 점들. 망가진 차림을 추스를 겨를은 없었다. 잘근잘근 손톱을 물어뜯는 전엔 없던 습관이 막 생길 참이었다. 5분도 채 되지 않은 사이 엄지 끝이 들쑥날쑥 갈려 있었다. 파고드는 아픔을 인식할 새도 없이 더욱 맹렬하게 움직이는 입과 달리, 부릅뜬 눈은 어느 한 곳도 응시하지 못했다. 비가 계속해서 창문을 때렸다. 거센 바람이 불어 불규칙한 소음을 만들다 바람이 잦아들면 다시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