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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 빙의글] 나는 왜 사랑하지 않는 건데요 진정되지 않는 마음은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한 달 전? 일 년 전? 그때부터? 어쩌면 처음부터. 하지만 처음은 어디일까. 그 시작점을 알 수 있다면 스스로 끝을 내기가 조금은 더 쉬웠을까. 어쩌면 지금보다 더 힘들었으려나. 윤기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매번 같은 생각을 했다. 어떻게 해서든 실마리를 찾으려 고군분투해도 다시 빼곡하게 들어차는 생각들.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결론은 나지 않았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이 관계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긴 한가. 처음부터 지금까지, 아무도 답해주지 않았다. 방 안에는 수건으로 머리를 터는 둔탁한 소리만 들렸다. 어깨에 닿지도 않을 만큼 짧은 머리. 그 끝에 맺혀 있던 물방울은 사방으로 튀었고, 윤기의 앞머리에 맺혀 있던 물방울은 얼굴을 타고 흘.. 더보기
[전정국 빙의글] 당신의 절망을 바라는 나에게 "우리 어차피 계속 못 만날 거잖아" 그 말은 정국에게 꽤나 큰 충격을 가져다줬다. 순간 숨 쉬는 것도 잊게 할 만큼. 사방이 단단한 쇠로 막힌 깜깜한 방에 갇혀 사정없이 머리를 부딪히는 느낌이었다. 이론적인 고통은 극심한데 정신은 오롯이 다른 곳에 있어 아픔조차 인식할 수 없는 그런 느낌 같았다.젓가락질이 멈추고 오물거리던 입도 일순간 얼어붙는다. "무슨 말이에요?""그렇잖아." 놓았다, 가 정국이 받은 느낌이었다. 자신과 관련된 모든 걸 저 한마디로 놓은 것 같다고. 그리고 이어지는 말은 없었다. 그렇잖아, 가 끝이었다. 그게 그녀가 우리를 놓는 방식이라는 생각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스며들어 심사를 뒤틀리게 만들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고삐가 풀리는 모습을 보이고 싶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 더보기
[김태형 빙의글] 1인 청룡열차 "알아서 해야지." 서운함에 억장이 무너진다. 주어가 나였든 너였든, 세상이 무너지고 세계가 무너져. 무자비할 정도로 날카로운 말이 가슴을 난도질하면, 차례로 따라오는 감정 없는 눈빛에 심장이 바닥까지 툭 떨어져 짓밟힌다. 아무런 말과 모션 없이도 심장을 잘근잘근 밟고 또 밟고. 밟힌 마음은 바닥에 끈적하게 눌어붙어 희미하게 두근. 그럼에도 멈추지 않고 두근두근. 순간 마음을 소용돌이치게 만들었던 말은 멀리 사라진 지 오래였다. 늘 그랬듯 말은 사라지고 거하게 휩쓸린 마음만 남는다. 이 수용적인 마음은 하루에도 몇 번이고 뒤바뀐다. 말 한마디에 따라서, 기분과 태도에 따라서. 멈추지 않을 것 같은 이 감정의 열차에서 눈을 질끈 감고 몸을 내던지는 것 밖엔 할 수가 없었다. 늘. 난장판 된 그녀의 마음이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