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정국 빙의글] 사라지지 않는 밤 둘의 행동이 성급했다. 타이밍이 엉켜 서로의 얼굴을 붙잡는 손이 동시에 부딪혔고, 이에 입술을 몇 번이나 박은 탓에 정국의 입술엔 터지지 않은 피가 작게 고여 있었다. 제자리에 놓여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는 사물들과 달리, 방에서 흐트러져 있는 것은 오로지 둘 뿐이었다.그토록 갈망하던 순간. 이 순간을 위해 한없이 갉히고 다쳤을 마음은 눈 녹듯이 사라져 있었다. 그저 얼굴과 몸이 가는 대로. 그렇게 얽히고설켜 방향감을 잃고 침대 아래로 떨어지면, 상황과 상관없는 신음이 입에서 터지곤 했다. 그마저도 하나의 배경음이 되어 버린 순간들을, 후회로 돌이키고 있을까. 시작이랄 것도 없이 눈 깜짝할 새 거기까지 닿아버린 자신들을 절망 속에서 자책해왔을까. 명을 다 한 것 같은 푸르스름한 불만 켜져 있는 비상구. 문.. 더보기
[김태형 빙의글] 회색 매번 같은 이 자리. 한쪽에 쌓인 꽁초를 보며 검지를 툭툭 치면 힘없이 떨어지는 재. 근래 어지간히 힘들었나 싶었다. 버려진 담배들이 죄다 몽당연필같이 짧은 게. 태울 수 있을 때까지 태우다 버려진 꽁초들. 그렇게 흡입한 니코틴으로 고민이 다 해결되긴 했었나? 그럴 리 없겠지. 안에 쌓여서 몸만 죽어나는 거겠지. 태형이 속으로 자문자답했다. 유난히 탁한 공기가 모여 상종하고 싶지 않은 곳이었지만, 집에 있는 날이면 하루에 꼬박 열 번 발을 들이고 마는 태형이었다. 오늘이 일곱 번째. 아직 다섯 시 밖에 안 됐는데 벌써 일곱을 써버렸다. 잠에 들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남아 있는데. 나름 세어가는 재미가 있는 숫자였지만, 오늘은 그 선을 훌쩍 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틀 전도 그랬다만. 주머니에 넣.. 더보기
[전정국 빙의글] Own it "안 해요." 시끄럽게 울리는 음악 소리를 뚫고 들려오는 단호한 목소리. 정국은 뱉어진 단 두 글자와 내비치는 표정으로 이 사람을 완벽하게 파악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상황이 아니어도 제 스스로 타인을 판단하고 드는 데는 도가 튼 상태라 여기며 살고 있었고, 지금은 한층 강한 확신이 마음을 들뜨게 만들고 있었다. 여자는 지금 보이는 저 모습이 실제 모습일 확률이 다분했다. 겉으로 내비치는 행동이 현재 자신의 마음 상태와 일치할 확률 또한 높았고. 눈 하나 깜짝 않고 그 모습을 그대로 주시하는데, 여자 또한 지지 않고 눈을 맞추고 나선다. 현재는 서로를 가소롭게 생각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정국은 이런 식의 단호한 모습에 당황을 타거나 할 성격이 아닌지라 한 발 더 몸을 밀착하고 나섰다. .. 더보기